세계를 보다


‘도깨비’ 만큼이나 매력적인 곳

캐나다 퀘벡

글_노중훈 / 사진_노중훈

그동안 캐나다 여행 하면 세계적인 미항 밴쿠버가 깃든 브리티시컬럼비아(BC) 주, 로키산맥으로 대변되는 앨버타 주, 나이아가라폭포를 볼 수 있는 온타리오 주를 먼저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캐나다 동부에 위치한 퀘벡 주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유는 분명하다. 공유, 김고은 주연의 드라마 <도깨비> 때문이다.

tvN 금토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 도깨비(이하 도깨비)>는 화려하다.

집필한 모든 드라마를 히트시킨 김은숙 작가를 필두로 제작진의 면면이 화려하고, 주요 배역에 투입된 배우들의 면면 역시 화려하다. 정교한 CG를 동원한 몇몇 장면 또한 예상보다 스케일이 크고 상당히 화려하다. <도깨비>의 화려함을 구축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드라마 촬영지다. 드라마에 얼굴을 내민 국내 장소들도 물론 흡입력이 있지만 티저 영상과 극 초반부에 나온 해외 로케이션 장면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궁금증은 이내 해소됐다. 주인공의 입을 통해 직접적으로 언급된 탓이다. <도깨비> 2회를 보면 단풍나무 사이를 걷던 지은탁(김고은 분)이 “그런데, 이 동네는 이름이 뭐예요?”라고 묻자 김신(공유 분)이 “퀘벡”이라고 일러주는 대목이 나온다. 곧바로 이어진 “어우, 이름도 멋져!”라는 은탁의 감탄사. 일명 ‘단풍국’이라고 불리는 캐나다 퀘벡 주의 주도 퀘벡시티(Quebec City)는 그야말로 다채로운 풍경을 보듬고 있어 광활한 땅 캐나다에서도 사뭇 다른 겉살과 속살을 보여준다.

퀘벡을 두고 하는 표현인 ‘캐나다 속 프랑스’나 ‘북미의 프랑스’라는 말은 퀘벡시티에 도착하는 순간 의심에서 수긍으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절대 다수의 주민이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를 사용한다는 것이다. 거리의 간판도 영어보다 프랑스어로 된 것들이 많다. 사람들의 기질과 문화에서도 프랑스의 기운이 물씬하다. 퀘벡 사람들을 일컫는 말인 퀘벡커는 마치 프랑스인처럼 일상생활에서 먹고 마시는 일에 각별한 애정을 기울인다. 그래서인지 고급 식재료를 사용한 요리들이 수두룩하다. 캐나다 전역의 최고급 식당에서 필요로 하는 거위 간의 공급처도 다름 아닌 퀘벡이다.
퀘벡시티, 그 중에서도 구시가에 해당하는 올드 퀘벡은 유럽의 느낌이 완연하다. 1690년부터 프랑스령이었던 퀘벡시티는 1759년 영국의 지배하에 놓였다.
이후에도 퀘벡에 대한 다른 나라의 침략이 빈번하자 성벽 건설이 불가피해졌다. 영국군이 꾸준히 성벽을 쌓으면서 퀘벡은 북미 대륙에서 유일하게 성으로 둘러싸인 도시가 됐고, 오늘날 이 도시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자리를 잡았다. 성벽 너머로 나 있는 휘뚤휘뚤한 골목을 따라 성당과 저택, 그리고 아기자기한 파스텔 톤의 건물들이 연잇는 풍경은 중세 프랑스의 어느 도시를 연상시킨다. 사람들이 머무는 숙박 시설에서도 유럽의 향기가 풍긴다. 확고부동한 퀘벡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샤토 프롱트낙(Chateau Frontenac)은 청동 지붕과 붉은 벽돌로 지어진 중세 프랑스풍 호텔이다. 건물 조성 당시 발굴된 유물을 인테리어 소재로 사용하고 있는 호텔 오베르주 생앙투안느(Auberge Saint-Antoine)에서도 프랑스 터치가 엿보인다.

<도깨비>에서 김신 소유의 호텔로 나오는 샤토 프롱트낙은
퀘벡시티 최고의 명소이자 랜드마크로 불린다.

호텔은 아예 관광객을 위한 투어 프로그램을 마련해놓고 있다. 가이드와 함께 구석구석을 훑어보면 200년 넘는 세월 동안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유명 인사들과 그들이 남긴 다양한 에피소드에 모르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빠져든다. 웅장한 건물 외관이나 호사스런 로비에 비하면 객실은 작고 어두운 편이다. 그러나 샤토 프롱트낙이 여전히 최고로 평가 받는 이유는 바로 장구한 역사의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 호텔의 낡은 엘리베이터, 높은 침대, 좁은 화장실은 면면한 세월의 빛나는 훈장이다. 건물 내부를 둘러봤다면 호텔 앞에 펼쳐진 뒤프랭 테라스(Dufferin Terrace)를 걸어보아야 한다. 400m 길이의 나무로 만든 산책로인데, 세인트로렌스 강과 주변 풍광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전망대 역할도 한다. 군데군데 벤치가 놓여 있어 거리의 악사들이 들려주는 음악을 들으며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왼쪽 전통 복장을 하고 샤토 프롱트낙 호텔 내부를 소개하고 있는 가이드의 모습. / 가운데 퀘벡시티 구시가지에서 만난 하프 켜는 할아버지. 거리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더없이 진지하다. /오른쪽 5층짜리 건물 한쪽 벽면을 온전히 채우고 있는 그림인 프레스코 오브 퀘벡. 퀘벡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표현한 벽화.

테라스에서 푸니쿨라를 이용하거나 계단을 통해 ‘성벽 아랫마을’인 로어타운으로 내려오면 북미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번화가인 프티 샹플랭(Petit Champlain)과 마주하게 된다. 오밀조밀한 상품들을 판매하는 가게와 개성 만점의 카페 및 레스토랑이 즐비해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거리 북쪽에는 프랑스 식민지 시절 초기 거주지였던 플레이스 로얄(Place Royale)이 있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흉상, 퀘벡 주 최고령 석조 건물인 노트르담 교회, 퀘벡 역사의 주요한 갈피마다 등장했던 15명의 모습이 담긴 엄청난 크기의 벽화 등을 두루 만날 수 있다. 뒤프랭 테라스를 따라 아브라함 평원(Plains of Abraham)으로 옮아가면 드라마 속에서 ‘영원히 사는’ 김신이 먼저 떠난 가족의 비석 앞에서 애틋한 마음을 표했던 장소에 도달한다. 촬영 소품인 ‘묘비’는 남아 있지 않지만 탁 트인 공원을 사랑하는 주민들의 마음은 한결 같다.

글을 쓴 노중훈은 국내와 해외를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풍경과 문화를 채록하는 여행 칼럼니스트다.
그는 캐나다 퀘벡이 ‘도깨비’만큼이나 매력적인 곳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