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트위터 블로그

계절 밥상 여행


바다 향 머금은 선홍빛 꽃숭어리

울릉도 홍합밥

글/사진_손현주(음식 칼럼니스트)

울릉도를 당일 들어가는 것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바다 사정은 자연의 영역이니 어쩌면 섬에 들어간다는 일은 기도가 있어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기다리는 사람 무색하게 울릉도 가는 배는 어제도 오늘도 뜨지 않았다. 겨울 뱃길을 예상 못한 것은 아니나 포항까지 내려와 발이 묶이니 속수무책이다. 여객선터미널 앞 허름한 모텔에 짐을 풀고 어슬렁거리기 시작한다. 어쩌랴. 과메기부터 대게, 모리국수, 물 회, 고래 고기까지 포항의 맛을 샅샅이 뒤지면서 눌러 앉을 수밖에. 하지만 마음은 종일 동쪽바다를 동동 떠 다녔다.

을릉상회 거리

린넨에 벤 락스 냄새가 익숙해진 사흘째 아침 7시. ARS를 확인하니 반가운 출항소식이다. 혹여나 사람이 많아 기회를 놓칠까봐 여객선터미널로 눈썹 날리게 달렸다. 애써 조급해진 맘을 다독였다. 다행히 배는 떴고, 낙엽처럼 찰방거렸으며, 속은 어김없이 뒤집힌다. 배가 출항한 지 30분도 안되어 난 정신이 혼미해져 봉투를 찾기 시작했다.

엉거주춤 하는 사이 벌써 해가 진다. 당초 목적인 홍합 밥부터 떠올렸다. 밥을 지으려면 30여분 걸리니 미리 주문해놓는 것이 좋다. 수첩을 뒤적거려 전화를 걸었다. 한 집, 두 집. 밥집을 점검하던 나는 아찔해졌다. 소위 ‘맛있는 집’ 주인들은 모조리 “미안하다”며 육지에서 전화를 받고 있다. 그들은 육지로 겨울 휴가를 떠나고 난 먹자고 섬에 들어온 것이다. 이즈막 눈 덮인 울릉도는 사람이 없어 호젓하고 한가로울 것이라며 호기를 부리고 떠나왔는데, 섬은 온통 빙판이고 해안 산책로는 자물쇠로 막아놨으며 독도는커녕 독도전망대 케이블카마저 운행이 정지됐다. 쥐고 온 맛집 전화번호는 무용지물이 됐다. 발로, 육감으로 뛰어야 하게 생겼다. 귀엣말 한마디 하자면, 당신은 겨울지나 춘삼월 산나물이 올라오거든 꽃대처럼 이 섬을 밀고 들어오시라. 꼭.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다. 울릉도 방문의 목적, 제대로 된 홍합 밥을 짓기 위해서 이튿날, 머구리 다이빙을 한다는 이름도 기이한 김울릉 씨를 급하게 수소문했다. 그는 사람 얼굴만 한 홍합의 서식처를 알고 있다고 한다. 몇 사람 거쳐 겨우 연결된 그는 “겨울이고 풍랑이 일어 물속을 들어갈 수 없다”는 대답만 들려줬다. 그러니 겨울 홍합 밥은 늦가을에 손질하여 바닷물을 섞어 얼린 냉동이다. 울릉도 홍합은 크기도 하거니와 삐들삐들 말린 후 잘게 다져 밥을 지으면 바다 향이 그윽하게 배고 밥 색은 마치 치자열매처럼 붉다. 씹는 질감이 쫄깃하여 삶으면 살이 무르고 허연 육지의 것과는 다르다. ‘열합’, ‘참담치’라고 불리며 껍데기에는 해초와 바다 생물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해녀나 잠수부들이 수심 20미터 이상 들어가야 따낼 수 있다.

6대째 뱃일을 하고 있다는 한 울릉도 토박이는 “본래 홍합 밥은 지금의 형태와는 좀 다르다”고 말한다. “여름이면 동네사람들이 바닷가로 물놀이를 갑니다. 갈 때 솥을 하나 들고 가요. 지금은 큰 것을 따려면 몇 십 미터 들어가야 하지만 그 시절엔 얕은 곳에도 큰 홍합이 흔했어요. 가져간 쌀을 솥에 넣고 큰 홍합만 다져 넣고 밥을 짓습니다. 한참 물에서 놀다가 출출하면 올라와 밥을 퍼먹고, 밥을 다 먹으면 자잘한 홍합을 삶아 먹고 놀았죠. 그게 홍합밥의 시작이에요”
어렵게, 성인봉 들어가는 절집 입구 식당에서 이름 알리기를 싫어하는 토박이 아주머니가 지어주는 울릉도 홍합밥을 맛보았다. 빨간 홍합을 잘게 썰어 찹쌀과 멥쌀, 간장, 참기름을 넣고 향긋하게 지어낸 진짜 토종 홍합밥이다. 밥그릇 가득, 홍합이 봄꽃처럼 박혔다. 많은 식당이 대부분 밥 위에 김 가루를 뿌리지만, 난 칼국수든 만둣국이든 얼버무리듯 재료의 맛을 ‘한통속’으로 몰아가는 그 검은 가루가 못마땅하다. 내 놓은 양념간장도 뒤로 밀어뒀다. 오직 찰진 밥 사이로 씹히는 붉은 홍합의 단순한 바다 향을 느끼기 위해 모진 파도를 뚫고 이 섬으로 숨어들었으니까. 그렇게 밥 한 그릇의 미학을 즐겨본다. 곁들여 내 온 돌미역국에서 울릉도의 푸른 바다가 드러나고 붉게 홍합이 박힌 밥에는 한 머구리의 인생이 자글자글 뜸 들었었다. 슴슴하고 고소한 밥.
한 수저, 다시 한 수저... 밥알 사이로 졸깃하게 씹히는 낯선 질감이 즐겁다. 막 눈을 뚫고 나온 울릉도 첫 봄나물인 전호나물도 얹어 먹는다. ‘산속의 미나리’로 불리는 전호나물의 진한 향기가 섞이면서 밥상은 이미 풍만한 봄이다. 단순하지만 산과 바다, 그리고 땅의 기운이 깃든 이 음식이야말로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생명의 밥상 아닐까. 상을 돌보던 아주머니 나물자랑이 대차다.
“울릉도 사람들은 봄이 되면 된장과 밥만 싸들고 산 속으로 들어가요. 산마늘(명이나물), 부지깽이나물, 삼나물, 우산나물, 미역취.... 지천이 나물이니 허기지면 막 딴 나물에 그냥 된장을 얹어 먹어요. 그 맛을 육지 사람들은 상상 못하죠.”

하지만 울릉도에 와서 오징어를 먹지 않는다면 반쪽 맛 기행일 것이다. 이른 아침. 길이 얼어서 노련한 택시들만 움직이는 산길을 돌아 저동항으로 달려갔다. 울릉도 8경 중 저동어화(苧洞漁火)가 떠올랐다. 밤바다 오징어잡이 배의 집어등이 꽃처럼, 반딧불처럼 밝혀 아름답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말이다. 그 치열한 밤을 보낸 배들이 들어오는 시간이다. 선창가에 서서 상자째 던져지는 오징어들을 만났다. 오징어는 내려지자마자 즉석에서 경매에 붙여지고, 바로 대기하던 아낙들이 손질을 한다.

따로 ‘다라이’에 모아 둔 오징어 흰 내장이 눈에 띈다. 이것이 바로 울릉도 사내들을 아내 치마폭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기막힌 술국재료란다. 여기 사람들은 무를 넣고 말갛게 끓여내는데 그 시원함은 밤새 술과 뱃일로 시달린 속을 명쾌하게 풀어준다. 오징어 내장탕을 제대로 끓여내는 현지 비결이 있다. 내장을 소금 간 하여 약 1주일 정도 숙성시킨다. 그래야 떫고 쓴맛이 빠져 달아진다. 국 이외에도 이 곳 사람들은 내장에 된장과 고추, 마늘 등을 넣고 자박자박 지진 후 겨울 납닥배추(노지배추)에 얹어 쌈을 싸먹는다. 노란 장은 따로 모아 시래기를 듬뿍 넣고 지진 찌개와 같이 먹으면 더 맛있다고 입을 모은다. 부둣가에 앉아 막연히 다음 배를 기다리며 먼 바다를 해찰하는 느린 여행을 우린 평생 몇 번이나 해볼까. 누가 내게 울릉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딱 사흘잡고 들어가 일주일을 먹고 나오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는 ‘식도락 감옥’이라고 말할 것이다.

<울릉도 계절 맛집>
‘보배식당’(도동, 054-791-2683, 홍합 밥), ‘상록식육식당’(남양, 054-791-7706, 약소),
‘향우촌’(도동, 054-791-8383, 약소), ‘신애분식’(천부, 054-791-0095, 따개비 칼국수),
‘바다회센터’(도동, 054-791-4178, 오징어 내장탕), ‘99식당’(도동, 054-791-2287,
약초해장국), ‘산마을식당’(나리분지, 054-791-4634, 산채나물)

글을 쓴 손현주는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여행 작가 겸 사진가로 20년간 잘 다니던 신문사에 홀연히 사표를 내고 2010년 안면도로 귀향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집에서 글을 쓰고 섬을 떠돌며 사진을 찍는다. 그녀는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읽고 쓰며 사진을 찍는 삶을 꿈꾼다. 지은 책으로는 신작 『열두 달 계절 밥상 여행』을 비롯하여 『와인 그리고 쉼』, 『태안 섬 감성 스토리』 등이 있다.

  • 목록으로
  •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