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밥상 여행


푸른 기운 동동 뜬 쑥과 흰 살점

통영 도다리쑥국

글/사진_손현주(음식 칼럼니스트)

통영 앞바다에 파닥파닥 금속성 볕이 내려앉았다. 그 볕은 사람을 무장해제 시키기에 충분하다. 근육을 푼 흙, 툭툭 터져 오르는 기운들. 남녘은 완연한 봄이다. 이즈막 납작 모자에 옷깃을 닭 벼슬처럼 세우고 통영 거리를 어슬렁거린다는 것은 잠시 묻어놓았던 내면의 풍류와 객기를 끌어내는 것이며 가슴속에 적잖은 낭만을 채우는 일일 것이다.

“도다리쑥국 한 그릇 먹어야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봄은
통영 도다리쑥국에서
시작되었다.

된장 살큼 푼 말간 국물에 통영의 그 푸른 기운처럼 동동 뜬 쑥과 도다리의 흰 살점. 국에서 파란 바다냄새가 난다고 해두자.
딱 두 달이다. 이때를 놓치면 다시 한 해를 기다려야 하는 애타는 봄 국이다. 그래서 통영의 봄은 삼월부터 가게마다 폼 잡고 양반글씨로 써 내려간 ‘입춘대길, 도다리쑥국’이 내걸리며 활기를 얻는다.
신새벽, 시장 통을 둘러보기로 한다. 시락국(시래기국) 집 문 틈으로 김이 모락모락 새어 나온다. 밤새 통영식 술집 다찌에서 술을 마셨거나 서호시장 4시 경매를 끝낸 사람들이 아린 속을 움켜잡고 몰려드는 ‘해장 성지’다. 서성대다 포장마차에서 콩국과 빼대기죽 (고구마와 곡식을 넣어 끓인 죽)으로 허기를 때우는 모습도 흔히 만날 수 있다.

그 먹먹한 서민의 시간, 여기저기 쓸쓸하고 허출하게 다니다가 시장 입구로 나와 도다리쑥국과 멍게비빔밥을 시켜놓곤 객지의 아침을 맞는다. 내 감정과는 상관없이 주방의 노란 냄비에서는 국물이 새벽잠처럼 끓는다. 토막 친 도다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국물 속으로 던지는 주인의 손놀림은 익숙하기만 하다. 마지막으로 쑥을 넣고 재빨리 한소끔 끓여내 퍼내는 손놀림이 재봉틀 실 땀처럼 빈틈없다. 금세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도다리쑥국이 놓였다. 잠시 눈을 감아본다. 향긋한 해쑥 향이 멀미처럼 올라올 것 같기 때문이다.

쑥을 수저로 누르고 국물부터 떠먹는다. 입안 가득 향긋한 초록이 넘실댄다. 봄이다.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는 담박함이 온몸을 편안하게 다스려준다. 여린 쑥은 씹히는가 싶더니 목젖으로 넘어가고 수저로 편편하게 뜬 도다리 살점은 그저 달다. 절로 시원하다는 소리가 나온다. 두부와 톳나물, 통멸치 젓갈, 간이 센 남도 김치가 국에 밀려 그대로 남았다. 30년간 맑은 국을 끓여왔다는 주인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음식을 추억하기에 바쁘다.

“도다리쑥국은 말 그대로 도다리와 쑥만 들어가는게 좋아요. 콩나물이나 묵은지를 씻어 넣기도 하는데 재료의 향긋한 맛을 즐기는 것이 바로 봄 밥상이잖아요? 또 쌀뜨물에 된장을 약간 풀기도 하지만 도다리는 비린 생선이 아닌데다 향긋한 쑥이 들어가니 맹물에 끓여도 괜찮아요. 바다와 육지의 오묘한 향이 어우러지는 게 도다리쑥국의 바로 매력이에요.”

말마따나 통영 도다리쑥국은 바다를 건너온다. 봄이 이른 욕지도나 한산도, 소매물도 등 섬에서 해쑥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격도 제법 나가서 한 그릇에 1만원을 훌쩍 넘는다. 늦은 2월부터 쑥국이 나오긴 하지만 도다리 살집이 얇기 때문에 국 맛을 아는 사람들은 육지에서 늦쑥이 나오는 4월 중순 도다리가 더 뭉근한 맛이 나온다고 얘기한다.

“살갗이 거칠거칠한 옴도다리가 최고예요. 지금은 비싸기도 하거니와 구하기도 힘들어요. 바닥부터 싹 쓸어 올리는 고대구리 배로 조업할 때는 싸고 많았는데, 이 돌도다리로 끓인 쑥국의 깊은 맛은 궁중음식이 부럽지 않다니까요.”

도다리쑥국 나오는 집은 어김없이 졸복국을 낸다. 졸복은 크기가 작아 독을 손질하려면 애통 터지는 생선이다. 한 입 크기지만 미나리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 졸복국은 속 달래는데 이만한 것이 없지 싶다. 또 통영의 대표 음식인 시락국은 장어 머리를 푹 고아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끓여낸 건강식인데, 방아잎이나 부추를 듬뿍 얹어 먹는다. 서호시장에서 먹는 시락국이 특이한 점은 반찬이 뷔페식이란 점이다. 찬 통에서 스스로 덜어 먹는데 가짓수가 10여 개는 족히 된다.

도다리쑥국 나오는 집은 어김없이 졸복국을 낸다. 졸복은 크기가 작아 독을 손질하려면 애통 터지는 생선이다. 한 입 크기지만 미나리 넣고 시원하게 끓여낸 졸복국은 속 달래는데 이만한 것이 없지 싶다. 또 통영의 대표 음식인 시락국은 장어 머리를 푹 고아 시래기와 된장을 넣고 끓여낸 건강식인데, 방아잎이나 부추를 듬뿍 얹어 먹는다. 서호시장에서 먹는 시락국이 특이한 점은 반찬이 뷔페식이란 점이다. 찬 통에서 스스로 덜어 먹는데 가짓수가 10여 개는 족히 된다.

배를 꺼트리기 위해 산책을 나선 길은 곳곳이 ‘꽃 편지’다.
통영은 바람이 너무나 달고, 동백꽃처럼 붉어서 사랑도 피웠으니 먼저 간 풍류객들 동선을 따라 가는 것도 봄날의 애상이지 싶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귤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을 듯’한 그녀 ‘경련’을 기다린 백석의 시가 핀 충렬사 계단이나 청마 유치환이 ‘정운’의 맘을 얻기 위해 5,000여 통의 시를 붙였다는 중앙 우체국에서 ‘행복’이라는 시비를 읽어보는 일은 애잔한 즐거움이다.
잠시 스쳐간 사랑의 상처로 동네사람들에게 미움을 사 끝내 명정동에 안기지 못한 박경리의 아리고 쓸쓸한 이야기들이 골목마다 숨어있는 곳이 통영이다. 도다리쑥국 한 그릇에도 연정이 묻어난다고 우겨도 될 법하다. 해는 길어지고 도다리는 살찌고 있다.

<통영 계절 맛집>
‘명실식당’(055-645-2598, 도다리쑥국, 갈치구이정식, 현지인들이 가는 토속음식점, 예약필수),
‘수정식당’(055-644-0396, 도다리쑥국, 멍게비빔밥, 졸복국, 1인분 회), ‘동광식당’(055-644-1112, 도다리쑥국, 황복국, 졸복국, 멍게비빔밥),
‘분소식당’(055-644-0495, 도다리쑥국), ‘멍게가’(055-644-7774, 멍게비빔밥, 해물뚝배기)

<통영 추천 맛집>
‘유락횟집’(055-645-0991, 각종 생선회), 다찌 ‘대추나무’(055-641-3877, 선술집),
‘훈이시락국’(서호시장, 055-649-6417, 장어육수 시래기국), ‘원조풍화김밥’(055-644-1990, 밥과 반찬 따로 충무김밥)

글을 쓴 손현주는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여행 작가 겸 사진가로 20년간 잘 다니던 신문사에 홀연히 사표를 내고 2010년 안면도로 귀향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집에서 글을 쓰고 섬을 떠돌며 사진을 찍는다. 그녀는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읽고 쓰며 사진을 찍는 삶을 꿈꾼다. 지은 책으로는 신작 『열두 달 계절 밥상 여행』을 비롯하여 『와인 그리고 쉼』, 『태안 섬 감성 스토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