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보다


tvN 윤식당 촬영지

‘길리’

글. 박재아 (Daisy Park) / 사진. 인도네시아관광청 (VITO.Seoul@indonesia.travel)

드넓게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 치맛자락에 평화로운 모래 밭이 흰 띠를 두르고 있는 인도양의 한 작은 섬, 그 위에 한적한 우리들만의 공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드나들던 외국인들, 서툴지만 정성스럽게 준비한 음식 앞에서 금방 친구가 되어버린 유쾌한 시간들.
매주 금요일마다 마치 여행이라도 떠난 듯한 설렘을 전했던 tvN ‘윤식당’이 인기리에 막을 내렸다. 입담이 좋은 사람이 나오는 것도, 극적인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하루하루 뻑뻑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나도 한 번쯤…’, 언젠가는…’ 꿈꾸는 일탈과 낭만을 선사했던 ‘윤식당’. 이 프로그램의 성공 배경에는 ‘불패신화’ 나영석PD가 오랜 공백을 깨고 지목한 촬영지, ‘길리’가 있었다. 죽기 전에 반드시 가봐야 할 지상낙원으로 전 세계 미디어가 극찬한 곳, ‘길리’가 궁금하다.

발리 품은 롬복

우리나라로 치면 제주도 옆 우도처럼, ‘롬복(Lombok)’ 옆에 ‘길리(Gili)’가 있다. 우리에겐 길리는 커녕, 롬복도 참 낯선 이름이다. 발리에서 롬복까지는 비행기로 20분, 배로는 대게 1시간이 걸리는데 그 동안 발리의 유명세에 눌려 ‘발리 옆 섬’으로만 수식되던 곳이었다.

“YOU CAN SEE BALI IN LOMBOK, BUT NOT LOMBOK IN BALI”
“발리에는 롬복 없지만, 롬복엔 발리 있어요.”

발리가 청량 음료라면 롬복은 맑은 생수로 묘사된다. 발리는 힌두교 문화가 지배적이지만 롬복은 힌두교와 이슬람, 두 가지 문화를 품고 있으며, 롬복에는 발리에 없는 새하얀 모래사장과 산호 가득한 바다가 있다. 발리가 세련되고 경쾌하다면, 롬복은 조용하며 순박하다.

‘윤식당’을 촬영한 곳으로 알려진 롬복 섬 북서부에 위치한 길리 트라왕안은 “허니문을 위한 10대 파라다이스”(론리 플래닛),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아름다운 섬 베스트3”(영국 BBC 방송), “아시아의 베스트 해변”(콘데나스트 선정), “세계 10대 최고의 여행지”(론리 플래닛), “숨막힐 듯 멋진 비밀의 섬” (뉴욕타임스) 등 전 세계 언론이 극찬을 아끼지 않은 곳이다. 다른 드라마의 해외 촬영지처럼 반짝 인기를 얻고 마는 그저 그런 곳이 아니다.

하지만 롬복 공항에서 내려 차로 2시간 30분을 이동한 후, 또 배를 타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여행사에서도 쉽게 권하기 어려운 곳이다. 현지인들조차 한국에서 왜 인기가 있는지 얼떨떨한 눈치다.

‘섬’이라는 뜻의 ‘길리’, 길리 삼총사

길리 메노, 길리 아이르, 길리 트라왕안을 묶어 ‘길리(Gili)’ 삼총사로 부른다. 이 세 개의 섬은 걸어서 불과 2~3시간이면 한 바퀴를 돌 수 있을 정도로 크기가 작다.

길리 트라왕안은 이 섬들 중 가장 크지만 해발 30미터에 길이 3킬로미터, 넓이는 2킬로 정도로 초미니 섬이다. 인도네시아어로 트라왕안은 ‘터널’이라는 뜻이다. 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이 이 섬에 긴 터널을 뚫었기 때문인데, 세 섬 중 가장 크고 인프라가 잘 갖춰진 곳이라 관광객 대부분 트라왕안에서 숙박을 한다.

트라왕안에서 배로 15분 정도이면 갈 수 있는 길리 아이르(Gili Air)와 길리 메노(Gili Meno)는 유명한 스노클링의 명소로 알록달록 움직이는 연산호와 바다 거북이 등 진귀한 해양생물을 스노클링 만으로도 쉽고 안전하게 만날 수 있다.

길리섬은 에메랄드 빛깔 바다가 섬 전체를 둘러싸고 있고, 티셔츠 한 장을 걸쳐도 모델 같은 유럽 여행객들이 한 컷의 화보처럼 해변에 누워 선텐을 즐긴다. 또 섬을 따라 작고 예쁜 카페, 바, 클럽, 레스토랑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길리의 분위기는 몰디브의 낮과 보라카이의 밤을 섞어놓은 듯하다. 낮에는 원색의 바다와 백사장에 늘어선 무지개 빛 쿠션들로 활기가 넘치는 서구식 휴양지라면, 밤에는 시쳇말로 ‘지옥’을 경험하게 되는 클럽과 바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길리 트라왕안은 ‘아이리쉬 펍'이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섬이기도 하다. 고향과 고국을 떠나 전 세계 곳곳으로 흩어진 이들이 모여 애환을 나누기 위해 만든 이 펍은 길리까지 넘어와 생활터전을 꾸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성의 길리 삼총사

길리에 한번 방문한 사람들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고 해 ‘매직 아일랜드(Magic Island)’라고 불리기도 한다. 길리 삼총사를 방문하면 꼭 해봐야 할 몇 가지를 소개한다.

길리 트라왕안(Gili Trawangan)

세 섬 중 크기가 가장 크며, 요가 센터 및 각종 편의시설도 다른 섬에 비해 잘 갖춰져 있다. 낮에는 해양 스포츠, 오후에는 바닷가 선셋 감상, 밤에는 사람 구경하며 맥주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

이 곳에서 꼭 해봐야 할 것!

1) 전 세계 요가 고수들과 함께 요가와 명상
2) 선셋 포인트에서 '바다 속 그네'를 타고 인증샷 찍기
3) 덜컹덜컹 엉덩이는 좀 아프지만 조랑말 치모도(Cimodo) 타기
4) 새로운 ‘윤식당’ 가보기
5) ‘윤식당’ 옆에 즐비한 와룽(Warung, 인도네시아 전통 음식점)에서 나시 짬뿌르(Nasi Campur, 모듬 볶음밥) 먹어보기

완벽한 ‘길리’에 없는 여섯 가지

다시 문 연 ‘윤식당’

방송 종료와 함께 영업을 종료한 ‘윤식당’. 원래 주인이 운영하던 슈퍼마켓으로 다시 바뀌어 ‘윤식당’을 추억하기 위해 일부러 길리를 찾은 사람들은 아쉬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얼마 전, 한 한국인이 방송 당시의 분위기를 살려 이 곳의 문을 다시 열었다. 주 메뉴는 역시 불고기를 이용한 라이스, 누들, 버거. 거기다 외국인 입맛까지 사로 잡을 수 있는 양념 치킨과 라면, 떡볶이 및 김밥도 추가됐다. 현재 이 식당 간판에 ‘윤식당’ 이름은 쓰지 못하지만 프로그램을 추억하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재아 여행큐레이터는 27살에 업계 최연소로 주한FIJI관광청의 지사장이 된 것을 시작으로 남태평양과 인도네시아를 비롯 태즈매니아, 모리셔스, 타히티 등 섬 지역을 브랜딩하는 일을 하고 있다. 현재 주한 인도네시아 관청 지사장, 남태평양 관광기구 상임고문, 주한 사모아관광청 대표를 맡고 있다. 객원기자, 칼럼니스트, 논설위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여행을 사회학적, 통섭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글을 주로 쓰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