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밥상 여행


편육 얹어 뚝뚝 끊어먹는 든든한 한 젓가락

춘천 메밀국수

글/사진_손현주(음식 칼럼니스트)

“예전에는 손님이 찾아오면 꼭 밤참을 냈어. 막국수만한 것이 없었지. 밀가루는 귀해서 생각도 못했고, 메밀로 국수를 뽑았어. 그런데 메밀은 찰기가 없잖아. 무릎 꿇고 엎드려서 녹진하게 치대야 해. 덩어리를 동그랗게 떼어 나무국수틀에 눌러 면을 빼냈지. 사실 반죽보다 중요한 것은 물 온도야. 팔팔 끓이지 않으면 퍼져서 죽이 되어 버리거든. 뜨거운 물에 들어간 면이 두 번째 올라올 때 얼른 건져 씻어야 해. 잽싸게 손을 움직여도 순 메밀로 뽑은 면은 뚝뚝 끊어져서 올챙이국수처럼 수저로 먹어야 했지.”

어쩌면 강원도의 메밀음식은 할머니의 독백처럼 ‘한’이다. 의병활동하다 산으로 숨어들어 화전을 일궜던 산사람들이 장터로 들고 온 곡식이 메밀이었고, 서민들이 다랑이 밭 천수답농사에서 가뭄 들어도 두 달 지나 고맙게도 수확이 가능했던 작물이 메밀이었다.

우리나라의 차가운 면은 냉면, 막국수, 밀면 3가지가 대표적이다. 그 중 현대의 평양냉면(함흥냉면은 감자면과 고춧가루 양념)과 막국수는 전분, 밀가루 등을 섞기도 하지만 메밀을 주로 쓰고, 부산 쪽에서 유명한 밀면은 진주식 해물육수에 밀가루 면을 쓴다고 보면 큰 테두리는 그어진다.

강원도권 막국수는 숙성 양념을 쓴 붉은 비빔면이다. 변수는 국물이다. 비빔을 기본으로 하는 막국수는 냉면보다 육수에 대한 관심이 덜하지만 여전히 동치미와 고기육수의 힘겨루기가 팽팽하다. 육수는 집안에 따라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꿩고기가 두루 쓰이고 동치미와 육수를 섞는 집, 오직 묵은 무만 고집해서 동치미를 담가 쓰는 집이 있다. 면은 메밀과 전분을 섞는데 메밀 함량이 많을수록 끈기가 덜하다. 간혹 순수 국산 메밀을 즉석에서 말아주는 집이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메밀 70~80%를 쓴다.

이 곳 사람들은 막국수에 처음부터 육수를 흥건하게 부어먹지 않는다. 퍽퍽한 면이 비벼질 만큼 육수를 넣고 기호에 따라 식초와 겨자를 곁들인다. 식초는 살균 효과가 있고, 메밀의 차가운 성질은 겨자가 잡아주니 ‘찬 면’집에는 꼭 따라다니는 강력한 소스다. 여기에 대부분 동치미를 곁들이는 이유는 무가 메밀의 독성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서민들의 애환이 깃든 음식이니 예전에는 지금처럼 고명과 야채가 올라가는 호사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그저 면만으로는 별 맛이 없으니 양념에 비벼 먹거나 동치미에 말아먹는 속 편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고추장이 들어가도 속이 화르르 타오르지 않아 편안하다. 이로 면을 물면 툭툭 끊어져 담백하며 고소하다.

글을 쓴 손현주는 음식 칼럼니스트이자, 여행 작가 겸 사진가로 20년간 잘 다니던 신문사에 홀연히 사표를 내고 2010년 안면도로 귀향했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의 집에서 글을 쓰고 섬을 떠돌며 사진을 찍는다. 그녀는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읽고 쓰며 사진을 찍는 삶을 꿈꾼다. 지은 책으로는 신작 『열두 달 계절 밥상 여행』을 비롯하여 『와인 그리고 쉼』, 『태안 섬 감성 스토리』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