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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콩 이야기

시간을 거슬러 간 두부 요리

나무는 시간이 쌓이면서 나이테가 늘어난다. 음식 역시 시간과 함께 변한다. 외관이 바뀌고, 맛이 달라지며, 어떤 것은 사라지고 다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격동의 시간 속에서도 늘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해 온 음식이 있다. 바로 새하얀 두부다. 조금만 힘을 가해도 뭉그러지고 마는 이 음식은 연약한 질감과는 달리 우리 곁을 오랫동안 지켜왔다. 삼엄한 왕실 속 임금님 밥상 위부터 오늘날 우리 식탁까지. 친숙한 국민 음식으로 그 자리를 견고하게 지켜왔다.

요즘 우리가 쉽게 접하기 어려운 과거의 두부 요리가 있다. 정성스러운 마음과 시간이 켜켜이 쌓인 그때의 두부 요리는 어땠을까.

선

왕실 수라간에서 만들던
정갈한 궁중 요리, '두부선'

두부선

왕실에서 즐겨 먹던 궁중 요리 중 하나인 ‘두부선’은 오이선, 어선과 함께 ‘선(膳)’ 요리에 속한다. ‘선’이란 오이, 호박, 배추, 두부 등의 재료에 고기를 채워 넣거나 섞어 조리한 음식을 의미한다. 대표적인 예로 오이선은 오이 속을 파내고 볶은 고기와 계란 지단을 채운 뒤, 식촛물을 끼얹어 차갑게 먹는 별미 요리이다. 과거 궁중에서 즐겨 먹던 것은 물론 양반가에서 손님이 오면 접대하는 요리였다.

두부선

두부선

두부선은 부드럽게 으깬 두부의 물기를 제거한 후, 다진 닭고기를 섞어 평평하게 다듬고 그 위에 표고버섯과 석이버섯을 곱게 채 썰어 얹는다. 이것을 증기에 쪄낸 후 한 김 식혀 정사각형으로 썰어내면, 그 모양이 마치 백설기를 연상시킨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는 요리는 대체로 곱게 다지거나 채 썰어서 조리하는 방식이 많다. 먹기 편하게 최대한 전 처리를 하는 것이다.

두부선은 모양도 아름답지만 단백질이 풍부한 두부와 닭가슴살을 활용하여 영양 측면에서도 뛰어나다. 소화력이 떨어지는 사람 또는 치아가 약한 아이나 어르신들에게도 잘 맞는 요리이다. 과거 전통 음식이지만 실용성이 뛰어나 현재 한식 기능장 시험에도 포함된 메뉴다. 또한, 500년 이상의 전통을 지닌 두부선은 해외 항공사의 1등석 기내식으로 제공되기도 했다. 여전히 과거의 위상을 이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선

조연에서 주연이 된 요리, ‘두부장’

두부장

장을 담글 때 부재료로 사용되던 두부가 메인 요리로 재탄생한 것이 ‘두부장’이다. 두부장은 두부를 간장, 고추장, 된장에 넣어 숙성시켜 먹는 장아찌의 일종이다. 이 두부 요리는 과거 음력 3월에 저장 음식으로 만들어졌다. 조선 시대의 농업 생활을 기록한 <농가월령가> 3월령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고추장 두부장도 맛맛으로 갖추 하소”. 두부장의 오래된 역사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두부장

원래 두부장은 장을 담글 때 맛을 좋게 하기 위한 부재료였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간이 밴 두부를 밥 반찬으로 즐기는 문화가 형성됐다. 조리법도 간단하다. 물기를 제거한 두부를 베주머니에 넣고 봉한 후, 간장, 고추장, 된장에 담가 숙성하면 된다. 조리 과정이 단순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감칠맛이 우러나면서 짭조름한 두부장은 밥과 잘 어울리는 반찬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먹을거리가 풍족해지면서 두부장을 따로 만들어 먹는 집이 드물다. 하지만 간장에 계란, 연어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만든 장요리가 유행하면서 간장 두부장을 찾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간장에 설탕, 마늘, 고추 등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고 두부를 넣어 장을 만들어 보자. 고소하고 짭짤한 두부를 밥에 슥슥 비벼 먹으면 밥도둑이 따로 없다. 과거의 요리가 시간을 타고 우리 곁에 다시 돌아온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두부장

선

사찰의 정성이 깃든
화려한 요리, '두부전골'

두부 전골

우리나라 두부의 역사는 불교문화와 사찰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육식을 금하는 사찰 요리에서 두부는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식재료였으며, 왕실 제사에도 반드시 올라가는 음식이었다. 두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두부를 직접 제조하는 절이 있었다. 두부를 뜻하는 포를 붙여 ‘조포사(造泡寺)’라고 불렀다.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진관사’는 제사 음식에 사용할 두부 등의 음식을 만드는 조포사 중 하나였다. 고려시대 때 지어진 이 사찰은 지금도 외국의 셰프들이 사찰 음식을 배우기 위해 찾을 정도로 조예가 깊은 곳이다.
진관사에서 주로 만든 두부 요리 중 하나가 ‘포증(泡蒸)’, 즉 두부찜이다. 사찰 요리는 위상이 매우 높았던 당시, 사찰 요리는 전국의 식문화를 주도했으며 포증은 사찰뿐 아니라 서울의 양반가에서도 즐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두부 전골

두부 전골

보통 사찰 음식하면 소박한 맛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1930년대 진관사에서 즐겨 먹던 ‘두부전골’은 사찰 음식의 소박한 이미지를 깨는 화려한 요리다. 해마다 섣달그믐이면 진관사에서 서울 삼각동의 이벽동댁으로 이 두부전골을 보냈다. 노란색, 초록색, 붉은색, 흰색, 검은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전골은 마치 우주를 축소해 놓은 듯한 모양이다. 계란, 미나리, 당근, 표고버섯 등을 사용하여 두부라는 흰 도화지 위에 음양오행의 이치가 곱게 수 놓아져 있다. 오늘날 두부는 주로 반찬이나 국, 찌개로 활용되지만, 과거에는 이렇게 아름답고 화려하게 선보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지금 우리가 즐겨 먹는 두부 요리들도 훗날에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할지 모른다. 그대로 유지될 수도 있고, 시대에 맞춰 상상도 못 한 모습으로 진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이든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질 것이다. 현재의 맛이 과거의 맛과 연결되고, 미래의 맛을 만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시간이 음식에 불어넣는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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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소개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영양사 출신의 요리 연구가 및 푸드 칼럼니스트로서 쿠킹 클래스, 인문학 강의, 방송, 심사의원까지 다채롭게 활동 중이다.
한국일보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인문학>외 다양한 칼럼을 통해 음식에 대해 재미있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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