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취해 화사한 벚꽃길을 오래도록 걸어본 사람이라면, 예쁜 사진을 남기기 위해 얇은 봄 옷을 꺼내 입고 꽃샘추위에 고생했던 추억도 슬며시 떠오를지 모르겠다. 겨우내 봄을 기다리던 마음이 벌써부터 분주하게 봄나들이를 준비하니, 떠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니 새침하고 쌀쌀한 봄을 따뜻하게 맞이해보자. 꽃처럼 화려한 색감과 산뜻하고 우아한 분위기의 미술관에서는 실내외 할 것 없이 온통 봄이다.
< 추천여행코스 >
화사한 봄날엔 구하우스
구하우스에 들어서면 안목이 좋은 친구 집에 초대받은 기분이 든다. ‘집’을 콘셉트로 한 새로운 개념의 미술관인 구하우스는 구정순 관장이 운영한다. 예술품은 소장하는 게 아니라 공유할 때 더 빛난다고 생각하는 그는 40년 넘게 모아온 570여 점의 소장품을 기꺼이 내보인다.
'미술관이자 집'인 구하우스 미술관에는 다양한 장르의 현대미술과 디자인 작품이 거실과 서재, 라운지 같은 생활 공간 안에 마치 인테리어 소품처럼 늘어섰다. 리빙룸, 베드룸, 패밀리룸, 서재, 다락방 등 전시실의 이름도 친근하다. 벽에 쓰인 숫자를 따라 공간을 이동하면서 콘셉트가 각기 다른 열 개의 전시실을 지나는 동안 세계 유명 작가들의 작품 300여 점을 자연스럽게 만난다.
서도호 작가의 작은 문도 반갑고, 데미안 허스트의 이미지도 흥미롭다. 자비에 베이앙의 모빌 작품이 파란색 풍선처럼 관람객을 반긴다. 소파에 앉아서 미술 서적의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마치 우리 집 서재에 앉아 있는 듯 편안하다. 호크니의 대형 작품 앞에서 작품의 일부가 되어 사진도 찍고, 이근세 작가의 ‘양’과 함께 포근한 봄날을 그린다. 1년에 3~4회의 기획전이 열리니 계절이 바뀔 때마다 방문해도 좋겠다.
구하우스 미술관
주소 경기 양평군 서종면 무내미길 49-12
전화 031-774-7460
구하우스에서는 그동안 공개하지 않았던 별관 블루룸을 예약자에 한해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예술가들의 블루 소품들로 가득한 공간을 하루에 한 팀만 프라이빗하게 즐길 수 있다.
차분한 봄날엔 이재효 갤러리
나무와 돌, 못, 나뭇잎 같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친숙한 재료를 사용해 작품을 만들어내는 이재효 작가의 갤러리로 떠나보자. 바닥에 떨어진 낙엽을 모아 천장에 매달고, 무거운 돌멩이를 구름처럼 들어 올리면 친숙했던 사물이 굉장히 낯설고 이상해진다. 놀랍고 신선하다.
2020년에 오픈한 이재효갤러리는 총 5개의 전시실과 카페로 이루어져 있다. 1전시실에는 돌 커튼과 나무 작품, 작가의 사진들을 전시했다. 2전시실에서는 낙엽과 나무의 속살을 만난다. 3전시실에는 반짝이는 못이 이리저리 휘어지면서 특별한 의미를 드러낸다. 4전시실에서는 작가의 독특한 아이디어가 번쩍인다. 우산살, 가위, 도끼, 방망이 등이 각양각색의 동물로 변신한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나지막한 탄성을 지르게 된다. 5전시실에서는 작가의 섬세한 스케치들이 펼쳐진다. 옥상에서 시원한 봄바람을 맞으며 작품을 감상하고, 갤러리와 작업실로 이어지는 길을 걸으며 봄 날씨를 만끽해 보자.
이재효 갤러리
주소 경기 양평군 지평면 초천길 83-22
전화 0507-1354-1402
비오는 봄날엔 소나기 마을
황순원은 순수문학의 작가로 불린다. 일제 말 한글의 사용이 금지되던 시대에도 흔들림 없이 우리말을 지키는 글을 썼다. 시 104편, 단편소설 104편, 중편 소설 1편, 장편소설 7편을 남겼다. 고향도 연고도 없이 세상을 떠난 황순원을 기리기 위해 제자들은 황순원 문학관의 자리로 양평을 낙점했다. <소나기>에 “내일 소녀네가 양평읍으로 이사 간다는 것이었다.”는 문장이 나오고, 소설에서 그려지는 풍경이 양평과 닮아서였다.
황순원의 <소나기>는 이름 모를 소년과 소녀의 싱그러운 한때를 그린다. 어느 날 오후 소년과 소녀는 징검다리를 건너고, 허수아비 줄을 잡아당기고, 꽃을 꺾어 다발을 만들고, 함께 소나기를 피한다. 황순원 문학관에는 다양한 디오라마와 영상, 오디오로 그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문학관뿐만 아니라, 그의 여러 대표작을 음미할 수 있는 산책로, <소나기>를 징검다리와 수숫단, 들꽃마을로 재현한 문학테마공원이 있어 봄날을 즐기기 좋다.
황순원문학촌소나기마을
주소 경기 양평군 서종면 소나기마을길 24 산 74
전화 031-773-2299
봄부터 가을 사이 소나기 광장에서는 낮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시 정각에 인공 소나기가 쏟아진다. 올해는 5월부터 시작이다. 한바탕 쏟아지는 소나기를 맞으며 깔깔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무지개보다 화사하다.
걷고 싶은 봄날엔 모란미술관
드넓은 잔디밭을 거닐기만 해도 모란미술관까지 드라이브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8,600여 평의 넓은 야외 전시장에는 눈을 돌리는 곳마다 국내외 작가들이 만든 100여 점의 조형물이 놓였다. 조각 전문미술관으로 출발해 동시대의 한국 현대조각을 소개하는 모란미술관의 자랑이다. 2층으로 된 실내 전시실을 관람하고 로댕의 조각상이 놓인 모란탑 내부도 둘러보자.
모란미술관
주소 경기 남양주시 화도읍 경춘로2110번길 8
전화 0507-1392-8027
< 추천 숙박 >
경기도 양평은 서울에서 가까운 드라이브 코스, 데이트 코스로 유명하다. 서울에서 출발하면 당일치기 여행도 가능하지만 이왕이면 여유롭게 자연을 즐겨보자. 북한강과 남한강을 따라 늘어선 펜션도 많고, 풀빌라도 늘었다. 글램핑장과 캠핑장도 여럿이다. 취향에 따라 ‘글 헤는 밤’에서 북스테이나, ‘생각 속의 집’에서 히노키탕을 즐겨보자. 중미산천문대에서 별을 보고 중미산자연휴양림에서 머무는 근사한 여행을 계획해 보아도 좋겠다.
< 양평의 맛 >
서울 근교의 드라이브 코스에 걸맞게 예쁜 카페와 숨은 맛집들이 다양하다. 간단한 별미로 맛보는 국수나 막국수, 냉면집들도 곳곳에 있고, 너도나도 원조라는 양평해장국집도 많다. 갈 곳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맛은 기본이요, 뷰가 좋기로 유명한 맛집과 카페를 소개한다.
남한강을 내려다보는 카포레 갤러리 카페
드라마 <시지프스>를 보면서 가장 놀라웠던 건 남녀 주인공의 케미나 시간여행이 가능한 미래가 아니라 천재공학자의 집으로 나온 독특한 건축물이었다. 이 건물은 건축가 곽희수가 '숲속의 캐비닛'이라는 컨셉으로 설계한 갤러리 카페 카포레다. 남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뷰 맛집으로 유명한 카포레는 통창으로 내다보이는 뷰만큼 곳곳에 걸린 그림도 좋다. 커피를 내려주는 1층 안쪽, 4층으로 이루어진 카페의 실내 공간, 별관 1층까지 전시가 이어지니 강변의 운치에 예술적 감성까지 더해보자.
카포레 갤러리 카페
주소 경기 양평군 강하면 강남로 458
전화 0507-1317-5342
가격 갤러리 입장권 음료 포함 성인 6,000원, 어린이 5,000원
뷰가 좋은 카페, 나인블럭 뷰 팔당
나인블럭 카페가 지점을 내면서 이름에 굳이 ‘뷰’를 붙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눈 앞에 한강이 흐르는 풍경을 보니,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구나 싶다. 이런 뷰에서는 무엇을 마셔도 기분 전환이 될 것 같다. 단아한 인테리어의 2층에는 작은 야외 테라스가 있고, 지하로 내려가면 여럿이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소파 자리와 한강이 더욱 가깝게 느껴지는 창가 자리가 있다. 야외에도 작은 포토스팟을 마련해 봄기운을 느끼기 좋다.
나인블럭 뷰 팔당
주소 경기 남양주시 와부읍 다산로 56
전화 031-577-8809
가격 아메리카노 7,500원, 카페라테 8,000원
봄바람 솔솔 부는 날, 강마을다람쥐
다람쥐의 주식인 도토리를 이용한 도토리묵 전문 식당이다. 도토리 묵사발이나 묵밥도 맛있지만 강마을다람쥐 최고의 매력은 팔당호를 향해 넓게 뚫린 근사한 정원이다. 줄을 서서 먹을 만큼 늘 북적이는 맛집이지만 대기표를 받아 들고 정원을 거닐면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지 않다. 봄꽃이 만발한 정원을 거닐며 풍경까지 근사한 맛집을 즐겨보자.
강마을다람쥐
주소 경기 광주시 남종면 태허정로 556
전화 031-762-5574
가격 도토리물국수 13,000원, 도토리묵사발 13,000원, 도토리전병 18,000원
글/사진_배나영
<리얼 국내여행>, <리얼 방콕>, <리얼 코타키나발루> 등을 썼다. 북튜브 ‘배나영의 Voice Plus+’를 운영한다. Instagram @lovelybae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