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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콩 이야기

두유, 새로운 일상이 되다

콩물에서 소이라떼까지, 전통은 어떻게 취향이 되었을까

아침 여덟 시, 도심 한복판의 카페에선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스팀기에서 피어오르는 뿌연 수증기, 바리스타의 능숙한 손놀림, 그리고 메뉴판 한쪽에 조용히 자리 잡은 문구 하나. ‘Soy Option Available.’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이 표시는 유당불내증이 있거나 우유를 마시기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배려에 가까웠다. 그런데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카페를 찾은 손님 중 적지 않은 수가 기꺼이 ‘소이’를 고른다. 아프거나 불편해서가 아니라, 좋아서 선택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우리는 두유를 ‘어쩔 수 없이 마시는 것’으로 여겨왔다. 우유를 못 마시니 대신 마시는 것, 고기를 줄이기 위해 선택하는 것. 그 이름 앞에는 늘 ‘대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었다. 그런데 지금 두유는 세련된 잔 속에 담겨 현대인의 아침을 깨우는 음료가 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우리가 마시는 것은 단순한 콩물일까, 아니면 새로운 시대의 취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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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를 둘러싼 동서양의 온도 차

두유를 둘러싼 동서양의 온도 차

두유의 역사는 생각보다 훨씬 길고 깊다. 기록에 따르면 두유의 기원은 중국 한나라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콩을 갈아 짜낸 액체는 귀한 단백질 공급원이었고, 서민들의 아침을 여는 든든한 음식이었다. 이 문화는 동아시아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한반도에서도 콩물은 낯선 음료가 아니었다. 불린 콩을 맷돌에 갈고, 솥에 끓여내던 풍경은 오랜 시간 이어진 일상의 한 장면이었다.

조선 시대에도 콩을 갈아 만든 음식은 영양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되는 음식으로 여겨졌다. 고려 시대 문인 이색이 두부의 우수성을 시로 읊었듯, 콩에서 비롯된 음식들은 오래전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아왔다. 콩물, 즉 두유는 두부와 같은 뿌리에서 나온 형제와도 같았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오랜 음료가 동아시아에서는 한 번도 스스로를 ‘우유의 대체품’으로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동양의 식탁에서 콩물은 무엇인가를 대신하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고유한 맛과 영양을 지닌 하나의 음식이었다. 그런데 이 콩물이 바다를 건너 서구권에 닿았을 때, 사람들은 먼저 이런 질문을 던졌다.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지?”

두유를 둘러싼 동서양의 온도 차

2017년 유럽 사법재판소는 100% 식물성으로 만든 음료에 ‘밀크(Milk)’라는 단어를 붙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 뒤에는 유럽 축산업계의 오랜 반발이 자리하고 있었다. 우유는 동물에게서 얻은 것이며, 콩을 갈아 만든 흰 액체에 ‘밀크’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후 유럽 마트의 선반에서 ‘Soy Milk’라는 표기는 점차 줄어들고, 그 자리를 ‘Soy Drink’, ‘Plant-based Beverage’ 같은 이름들이 채워 갔다.

사실 서구에서 ‘Soy Milk’라는 표현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의 일이다. 당시 프랑스에서는 두유를 ‘lait de soja’, 즉 ‘콩의 우유’라고 부르는 표현이 등장했다. 이후 1960~70년대 미국에서 건강식품 운동과 채식 문화가 확산되며 두유는 상업적 제품으로 대중화되었고, ‘Soy Milk’라는 이름도 자연스럽게 슈퍼마켓 진열대에 자리 잡았다.

그러나 수십 년간 익숙하게 쓰이던 이름은 결국 법정 문턱을 넘었다. 2017년 판결 이후 ‘Soy Milk’는 적어도 EU의 공식 표기에서는 한발 물러나게 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라벨은 바뀌었어도 사람들의 일상 언어는 쉽게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트 선반의 이름은 달라졌지만, 카페에서 “소이로 주세요”라고 말하는 습관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이 논쟁 자체가 낯설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콩을 중요한 식재료로 여겼고, 콩을 갈아 만든 음료 역시 독립된 음식문화로 자리 잡아왔다. 소의 젖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콩이 가진 맛과 영양을 즐기는 방식이었다. 같은 흰색 음료를 두고도 한쪽에서는 ‘무엇의 대체품’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오래된 음식’으로 바라본 셈이다. 두유를 둘러싼 동서양의 시선 차이는 그래서 더 흥미롭다.

두유를 둘러싼 동서양의 온도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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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라떼 한 잔에 담긴 새로운 선택

소이라떼 한 잔에 담긴 새로운 선택

뉴욕 브루클린의 카페, 런던 쇼디치의 테이크아웃 창구, 서울 성수동의 스페셜티 카페. 이곳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 있다. 종이컵을 감싸 쥔 채 소이라떼를 마시는 20대와 30대의 모습이다.

물론 유당불내증 때문에 두유를 선택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요즘 소이라떼를 고르는 이유는 훨씬 다양하다. 몸에 맞는 음료를 찾기 위해서, 동물성 식품 소비를 줄이기 위해서, 혹은 조금 더 가볍고 담백한 맛을 즐기기 위해서다. 이제 소이라떼는 단순한 음료 선택을 넘어, 자신의 취향과 가치관을 드러내는 방식이 되었다.

무엇을 사느냐보다 왜 사느냐가 중요해진 시대. 두유는 그 흐름을 잘 보여주는 식품 중 하나다. 건강, 환경, 취향, 라이프스타일이 한 잔 안에서 자연스럽게 만난다. 그래서 오늘날의 두유는 더 이상 ‘대체 음료’라는 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스스로 선택되는 음료, 그리고 하나의 취향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소이라떼 한 잔에 담긴 새로운 선택

하지만 아무리 좋은 가치와 신념을 담고 있어도, 결국 맛이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면 오래 사랑받기 어렵다. 서구권에서 두유가 오랫동안 대중화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다. 이른바 ‘Grassy Flavor’라 불리는 콩 특유의 풋내와 비린 향 때문이다. 날콩에서 느껴지는 풋풋하고 쌉싸름한 맛은 두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꽤 큰 장벽이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식품업계는 오랜 시간 기술을 발전시켜왔다. 비린 향을 유발하는 효소를 열처리로 억제하고, 잡냄새를 줄이는 공정을 적용하며, 부드러운 목넘김을 위한 분쇄 기술도 정교해졌다. 그 결과 오늘날의 두유는 과거의 투박한 콩물 이미지를 벗고, 훨씬 깔끔하고 고소한 맛으로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다.

소이라떼 한 잔에 담긴 새로운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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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한 잔에 담긴 우리의 미래

일상 속 한 잔에 담긴 우리의 미래

콩은 참 변화무쌍한 재료다. 밭에서 수확한 딱딱한 알맹이로 시작해 두부가 되고, 된장이 되고, 두유가 된다. 형태는 달라지지만 그 안에 담긴 가치는 한결같다. 인류가 오랜 시간 쌓아온 지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기술, 그리고 더 나은 방식을 찾으려는 의지다.

오늘 아침 우리가 마신 두유 한 잔은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오래전 동아시아의 식탁에서 시작된 음식문화이자, 이름을 둘러싼 논쟁 속에서도 세계인의 일상에 자리 잡은 음료이며, 나의 몸과 지구를 함께 생각하는 사람들이 고른 선택지다.

다음번 카페에서 메뉴를 고를 때, 잠깐 멈춰보자. 그리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오늘 내 잔에는 어떤 취향과 가치가 담겨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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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소개  푸드 칼럼니스트 이주현
영양사 출신의 요리 연구가 및 푸드 칼럼니스트로서 쿠킹 클래스, 인문학 강의, 방송, 심사위원까지 다채롭게 활동 중이다.
한국일보 <이주현의 맛있는 음식인문학>외 다양한 칼럼을 통해 음식에 대해 재미있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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